흠집이 나도, 우리는 움직여야 해
Dafne Lee_@angerispower
D is for delirium and then pure E moment
5월 13일, 신림동 고시촌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온 나는 서점에 가서 책을 하나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 당시 나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혼돈-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참고할 만한 책이 있었으면 하던 참이었다. 서점 서가에서 뽑아든 대여섯 권의 책들 중 잭 케루악Jack Kerouac의 『길 위에서On the road1)』를 샀다. 그 이름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잭 케루악, 비트 세대의 아이콘이자 힙스터의 로망이 아닌가. 물론 그 이유만으로 책을 집어든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사실 할인 판매 중이어서 값이 무척 쌌던 이유도 있다). 허나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관계라든가 혼돈 따위에 대한 생각은 옅어졌다. 대신 원래의 목적과 의도와는 달리, 다른 태도로 글을 읽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나는 힙스터다2)
나는 힙스터이기 때문이다. 순순히 인정한다. 힙스터 맞다. 미국에서 1년 정도 힙스터들과 놀다 보니 나도 무려 힙스터!가 되었다. 그 당시 내 친구들은 이미 잭 케루악쯤은 다 마스터 한 상태였고 심지어 빅 서Big Sur3)로 로드 트립을 다녀오기까지 했었다. 나는 그 지점에서 상당히 열등감을 느꼈었다. 그러니 On the road를 읽는 것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자위행위였던 것이다. 삼선 쓰레빠에 추리닝을 장착한 고시생들이 학원과 독서실로 향하는 것을 흘겨보며, 담배를 물고 책을 읽을 때의 그 섬망delirium과 우월감도 덧붙여서. 이러한 개인적인 감상도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나는 힙스터니까, 그것의 토대 혹은 뿌리인 비트세대를 알고 싶다’라는 자세로 책을 읽었다. 즉슨, 현 시대의 힙스터에게 이 책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며 책을 읽은 것이다. 현재의 힙스터와 비트 세대를 연관 지어 보는 작업은 뒤에서 다루기로 하고, 우선 비트 세대와 책, On the road에 대해 쓴다.
The Beaten generation
폭력은 인간의 마음에 흠집을 남긴다. 이를 상처라 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그것에 노출된 방식의 여하와는 관계없이, 폭력은 인간을 어떠한 심적/내적 상태에 빠트린다. 폭력을 목격하든, 그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되었든, 어찌되었건 폭력을 “경험”한 인간은 그 전과 같을 수 없다4). 이러한 상태의 변화를 나는 흠집이라 부르겠다. 따라서 흠집은 상처와 달리 치료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무언가의 전조 혹은 원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폭력이 1950년대, 미국을 급습한다. 여기 일련의 젊은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비트 세대Beat Generation”라고 불리게 되었다. 문자 그대로, 두들겨 맞은beaten, 그래서 흠집이 난 세대. 그들은 새로운 시각New Vision을 갖고자 했다. 이로 부터 그들은 다양한 실험을 하기 시작한다: 약물, 성, 동양 종교와 철학, 물질주의의 거부 따위5). 그들의 약물에 대한 실험은 그나마 널리 알려져 있는데, 술, 마리화나, 벤제드린, 모르핀과, 이후 LSD와 같은 환각 약물psychedelic drug 따위에 대한 실험을 통하여 창작을 꾀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자유분방한 성생활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비트 세대의 주요 인물 중 상당수가 (특히 앨런 긴스버그Allen Ginsberg6)와 윌리엄 버로우스William S. Burroughs7)) 양성애와 동성애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한 비트 작가들은 New Vision의 깃발 아래 새로운 문학을 시도하는데, 그들은 이전의 낭만주의를 탈피하여 새로운 서술 방식을 실험했다. 잭 케루악이 고안해낸 즉흥적 산문Spontaneous Prose 스타일은 이러한 실험의 결과물들 중 하나라 할 수 있고, 이 기법을 통해 쓰인 그의 작품들은 여타 비트 세대작가들의 작품들과 견주어 볼 때,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후대 작가들에게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길 위에서
이러한 케루악의 작품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는 것이 On the road이다. 비트 세대들에 대해 “가장 아름답게 짜여졌고, 가장 명확하며 중요한 서술8)”이라 칭송되는 이 책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한 비트 세대 젊은이가 떠나는 일련의 로드 트립에 대한 기록이다. 주인공 샐 파라다이스Sal Paradise는 잭 케루악의 분신이다.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사건은 실존했던 비트 세대의 인물들을 모델로 한 것이며(실제로 On the road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장장 37미터짜리 스크롤Scroll에서 케루악은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케루악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On the road는 그 어떤 기록물보다도 더욱더 비트 세대의 삶과 본질에 근접한 기록이자 비트 세대 그 자체라 할 수 있다9).
샐 파라다이스는 작품 안에서 총 네 번의 로드 트립을 떠나며 이는 각각의 장에서 개별적으로 다루어진다. 대부분의 내용은 샐 파라다이스와 그의 친구, 딘 모리아티Dean Moriarty에 할애된다. 닐 캐서디Neal Cassady10)를 모델로 만들어진 인물, 딘 모리아티는 “빛나는 정신을 가진 성스러운 전과자11)”로서 샐 파라다이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인물이자 그가 길 위에 서게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12). 샐 파라다이스는 딘 모리아티를 만나기 위해, 혹은 딘 모리아티와 함께 로드 트립을 떠난다. 주로 그는 히치하이킹을 하며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미국 대륙을 횡단한다. 히치하이킹을 통해 만나는 수많은 부랑자들과 히치하이커들, 그들과 함께하는 데서 샐은 미국을 발견한다. 또한 로드 트립 도중에 그가 거쳐 간 도시들-덴버, 시카고, 일리노이, 프리스코와 샌프란시스코-의 사람들, 무수한 파티들과 여자, 술, 재즈에서 샐은 개별적인 즐거움들을 발견한다. 새로운 도시에는 새로운 즐거움이 있으므로 앞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이 즐거움, 바로 킥kick을 위해 그들은 길 위에 선다.
“Yes, yes, yes... Look-at-those-cats!”
킥kick. 샐과 딘은 그들의 여정에서 무수한 킥을 추구한다. 킥을 정의 내리기란 쉽지 않다. 그들의 친구들, 재즈 음악가의 연주, 노새가 끄는 짐수레를 타고 가는 흑인 노인 혹은 멕시코 국경지대의 검문 경찰이 킥이 되기도 한다. 사실 그 어떤 것도 킥이 될 수 있다. 어떤 대상을 파고 들어가는 것, 딕dig하는 순간 그 대상은 킥이 된다. 사실 글로 설명하기는 매우 모호한 개념이 아닐 수 없다13). 딘이 샐에게 ‘저들을 파보라’고 하며 이어지는 대사를 통해 디깅의 의미를 유추해 봄직하다.
‘우리는 오늘 밤 함께 덴버를 팔 거야, 그리고 모두들 뭘 하고 있는지-사실 우리한 텐 대수롭지 않지만-볼 테고. 요점은 우리는 그것이 뭔지를 알고 있고 우리는 시간 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이 좋다는 걸 알고 있지.’
일반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그들이 매우 무책임하고 답 없는 젊은이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은 공허하다. 그들은 길 위에 있기 때문이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힙스터를 위한 뉴-비전
그럼 비트 세대에 대한 앞의 설명을 지금 힙스터들에게 적용해보자. 제2차 세계 대전과 같은 물리적, 군사적 폭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물론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과 같은 군사적 위험을 경험하긴 했으나 전쟁과 같은 거대한 폭력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가해진 가장 강력한 폭력은 자본과 제도의 폭력이 아닐까 싶다. 자본과 제도가 우리를 공격하고, 그로 인해 우리가 흠집을 입게 되는 과정을 여기서 상술하지는 않겠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흠집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힙스터들의 뉴 비전New Vision은 무엇인가.
비트 세대의 전철을 밟아 우리도 마약하고, 술처먹고, 섹스하고, 히치하이킹 해야 하나. 여전히 술과 섹스는 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 마약은 합법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남은 것은 히치하이킹-로드 트립인데 이는 힙스터들에게 꽤나 어려운 퀘스트다. 특히 한국에선, 히치하이킹이 문화적으로 가능했던 시대가 전혀 없었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가능한 것으로 인지하고 있지 조차 않다. 미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최근 히치하이킹을 하며 미국 대륙을 횡단하려는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있었다. VBS TV14)가 기획한 데이빗 초David Choe15)의 Thumbs Up, America16)가 그것인데, 데이빗 초라는 예술가가 LA에서 마이애미까지 화물열차, 히치하이킹 등을 통해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가히 21세기의 On the road라 할 만하다(실제로 데이빗 초는 마치 비트 세대를 염두에 두기라도 한 것 마냥, 로드 트립 내내 양복을 입는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길 위에서 새롭고 흥미로운 사람들과 도시들을 발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특히 한국의 힙스터들에게 이는 여전히 요원하다.
고백하자면 나는 킥이 두려웠다. On the road에서 샐과 딘이 경험한 종류의 킥과 비슷한 경험은 많이 있었지만(주로, 외부적 무언가의 도움이 컸다, 말 안 해도 다 아시리라 믿는다. 더 쓰면 포돌이와 정모해야함), 매 순간마다 극도의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그렇다고 해서 킥을 격하하여 "소소한 일상"에서 놀라움, 행복, 기쁨을 발견하고 싶지는 않다. 킥은 외부를 향한다. 그것이 우선된 다음, 내면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나는, 길 위에서 킥을 발견하고 싶어졌다. 흠집이 나더라도, 끊임없는 반대와 폭력을 마주해도 움직이려 한다. 허나 지금은 시간과 돈만 있으면 너무 쉽게 일상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변경이 소멸한 시대"다. 어느 순간부터 dig하고 있지 않다. 그 방법을 잊어버렸다. 순간을 고작 140자에 너무 쉽게 흘려버리고 만다. 그렇다 해도 어느 순간, 일상에 안주하기에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흠집이 나버리지 않았나. 여전히 자기 자신 안에는 "변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에 대한 추구-dig your kick-가 없다면, 설사 땅 끝 까지 간다고 해도 변경은 아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시대가 되어 버렸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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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 더 로드’, 그 말은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문화적 정체성의 근원이자,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나를 청춘의 열기에 휩싸이게 만든 강렬한 노스탤지어의 다른 이름” (김연수,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문학 http://navercast.naver.com/literature/classlit/3761)이기 때문에 나는 글에서 계속 On the road라고 쓰겠다,
2) 따라서 본 글은 일반 젊은 청년들 보다는 힙스터를 주 대상으로 논의를 전개할 것임을 밝혀둔다. 설마, 힙스터가 뭔지 모르는 독자들은 http://krrr.kr/wiki/index.php/힙스터 를 참고할 것.
3) Big Sur(1962, Jack Kerouac). 잭 케루악의 분신인 주인공의 로드 트립을 주제로 한 책. 로드 트립의 목적지이기도 한 Big Sur는 북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해안 지방으로, Monterey 남쪽에 있다.
4) 폭력, 특히 전쟁과 변화의 관계에 대해서 나불나불 3호 ‘변신’에 실린 루피님의 글, “천안함을 본, 우리는 허트로커”를 참고 바람. 글의 주제가 본 글과 딱히 연관되지는 않으나, 전쟁이 인간을 변하게 한다는 바에는 양쪽 다 동의한다는 점에서 참고가 될 만하다.
5) http://en.wikipedia.org/wiki/Beat_Generation
6) Allen Ginsberg, 1926-1997, 시인, 비트 세대의 주요 인물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이후 비트 세대와 60년대의 히피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였다. 대표작으로는 Howl(1956), The Fall of America:Poems of These States(1973) 등이 있다.
7) William S. Burroughs, 1914-1997, 작가, 대표작으로는 Naked Lunch(1959) 등이 있다.
8) “the most beautifully executed, the clearest and most important utterance.” Millstien, Gillbert. Books of the Times 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 September 5th, 1957.
9) “The book is both a story and a cultural event.” Theado, Matt. Understanding Jack Kerouac. Columbia SC: University of SC Press, 2000.
10) Neal Cassady, 1926-1968, 작가, 시인, 저서로는 The First Third(1971)가 있으며, 그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들은 책 Neal Cassady: Collected Letters, 1944-1967 (2004, letters)으로 출간되었다.
11) “the holy con-man with the shining mind”
12) “With the coming of Dean Moriarty began the part of my life you could call my life on the road.” Kerouac, Jack. On the Road, Penguin Classic, 2000.
13) "Basic to hip is the concept of digging, to dig, How would you define, dig?"
"It's like, when you dig something. You know, when you dig some chick or some cat, you know, when you pick up on something, you dig it."
"Would it mean to like, to understand or to appreciate it?"
"No, it's more like, in music you dig, you know what is a chord or tone, like you get in nowhere in between C and C#, you can't call it C because it isn't. That's like dig."
"Ladies and gentlemen, now you begin to see one of our problems with the hip language. Each hip word or phrase carries with it and implication of the speakers background and his involvement with hip society. In other words, the phrase 'I dig' not only mean 'I understand', but 'I am a special sort of person to understand in very special way'."
"Yeah, that is exactly what I said."
- Del Crose&John Brent, How to Speak Hip, Mercury Records. 1959,
14) 힙스터라면 반드시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Vice media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텔레비전 네트워크. 짧은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비디오를 주로 제작하여 올리며, 주로 인권문제, 음악, 여행가이드 등의 내용을 다룬다.
15) David Choe, 1976- ,화가, LA를 중심으로 활동. "dirty style"의 그림들로 성공을 거두었다.
16) Thumbs up America, VBS TV를 통해 방영된 David Choe와 그의 사촌 Harry Kim의 로드 트립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현재까지 총 세 개의 시즌이 나와 있다: LA에서 마이애미까지의 여정을 담은 Season 1, LA에서 국경을 넘어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알래스카까지의 Season 2. 그리고 베이징에서 선전까지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Season 3. 무엇보다도, David Choe와 그의 사촌 Harry Kim이 정말 웃기다. 개인적으로는 한번 쯤 볼만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17)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여행법』. 문학사상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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